사비니 여인들의 중재(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by Jacques-Louis David - 1796–1799 - 385 cm × 522 cm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by Jacques-Louis David - 1796–1799 - 385 cm × 522 cm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캔버스에 유화 • 385 cm × 522 cm
  • Jacques-Louis David - August 30, 1748 - December 29, 1825 Jacques-Louis David 1796–1799

오늘 저희는 로마사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묘사한 명작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서양사에서 가장 전설적인 이야기를 전설적인 화가가 그렸답니다.

전설에 의하면 초기 로마에서, 로물루스(Romulus, 로마의 건설자이자 최초의 국왕)의 지휘를 받은 로마 전사들은 사비니의 여인들을 납치하여 각자의 아내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로물루스의 아내인 헤르실라(Hersilia)―티투스 타티우스(Titus Tatius, 중부 아펜니노산맥에 살았던 이탈리아 민족, 사비니의 왕)의 딸―가 남편과 아버지 사이에 뛰어들었고, 그녀의 아이들을 두 남자 사이에 놓아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활력에 찬 로물루스는 반쯤 물러선 타티우스를 창으로 공격할 태세이나, 주저하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타티우스가 로마를 공격했을 때, 베스타 신전의 사제, 타르페이아(Tarpeia)의 배신 덕분에 도시를 거의 손에 넣을 뻔했습니다. 타르페이아는 "그들의 팔에 잔뜩 지니고 올 것들"에 대한 보답으로 사비니인을 위해 도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녀는 사비니인에게 황금 팔찌를 받으리라고 기대한 것이죠. 그러나 사비니인은 그녀를 압살했고, 바위에 그녀를 내던져버렸습니다. 이후, 그 바위는 타르페이아의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자크루이 다비드는 룩셈부르크 궁에 투옥 중이었던 1795년에 이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공포 정치로 절정에 달한 시민혁명 중에 다비드는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고, 이후 프랑스는 유럽의 여러 나라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1796년, 그와 별거 중인 아내가 감옥에 방문한 후, 이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내를 기리기 위해, '갈등을 이겨내는 사랑'과 '아이를 보호한다'는 주제를 가진 오늘의 이야기를 전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혁명의 유혈사태 이후, 프랑스 시민 모두 다시 뭉치자는 간청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거의 4년이 걸렸습니다.

추신 1. 앞서 언급했듯이, 자크루이 다비드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저희의 명작 50점 엽서 세트에도 포함되었습니다. 마음에 드실 거예요! :)

추신 2. 이 작품이 비욘세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다는 사실, 아셨나요? 그녀의 전설적인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루브르의 명작들을 감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