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시내티 미술관과 함께하는 특별한 한 달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동안 좋은 시간 보내셨길 바라요 : )
로버트 던컨슨(Robert Duncanson)은 유럽과 아프리카 혈통의 19세기 미국 조경가입니다. 로버트의 할아버지인 찰스 던컨슨은 버지니아에서 해방된 노예였습니다. 그는 1790년 이전에 북쪽으로 파예트(Fayette)로 이주했고, 찰스의 아들 존 딘과 그의 아내 루시는 그곳에서 로버트를 포함한 7명의 자녀를 키웠습니다.
던컨슨은 미시간 주 먼로에서 자랐으며, 그곳에서 가업인 하우스 페인팅, 장식 페인팅, 목공을 배웠습니다. 1838년부터 1839년까지 그는 먼로에서 도장공이자 유리공예가로 일하면서 예술가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추구하기 위해 1840년 경 미시간 주를 떠나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로 향했습니다. 남부에서 매우 가까운 도시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일하면서 직면하게 될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다행히도 곧 신시내티 시민들로부터 몇 개의 의뢰를 받게 됩니다. 1848년 노예 폐지론자인 찰스 에이버리(Charles Avery)에게서 의뢰받은 풍경화인 <절벽 광산>과 <슈피리어 호수>를 통해 그의 명성은 크게 높아집니다. 이 기회 이후로 그는 흑인 예술가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평생 좋은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1861년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던컨슨은 전투의 혼란과 반 아프리카계 미국인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미국 북부와 캐나다를 여행했습니다. 1865년 여름, 던컨슨은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영국 언론으로부터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1860년대 후반부터 던컨슨은 정신 질환으로 고생했고, 거장 예술가의 유령이 자신의 영혼을 사로잡았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망상 증세는 처음에는 하우스 페인팅, 나중에는 그림 작업을 할 때 납이 든 페인트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미시간에서 말년을 보낸 던컨슨은 1872년 12월 21일 디트로이트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P.S. 여기에서 로버트 던컨슨에 대해 더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