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걸이를 한 소녀 습작(Study of a Girl with Earring) by Malvin Gray Johnson - 1930 - 41.91 x 26.67 cm 귀걸이를 한 소녀 습작(Study of a Girl with Earring) by Malvin Gray Johnson - 1930 - 41.91 x 26.67 cm

귀걸이를 한 소녀 습작(Study of a Girl with Earring)

종이에 잉크 • 41.91 x 26.67 cm

  • Malvin Gray Johnson - January 28, 1896 - October 4, 1934 Malvin Gray Johnson

    1930

할렘 르네상스(1920년대와 1930년대 뉴욕 할렘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생동감 있는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부흥 운동) 시기의 그의 많은 동료들처럼, 말빈 그레이 존슨(Malvin Gray Johnson)의 뉴욕으로의 이주는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군 복무를 하기 이전에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잠시 등록을 했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23년에 아카데미로 다시 복귀하여, 뉴욕에서 할렘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그의 입지를 다시 다졌습니다. 그의 복귀는 우연히도 흑인 예술가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확대되는 시기와 맞물렸는데요. 특히 하몬 재단(Harmon Foundation)과 같은 기관들을 통한 지원이 그러하였습니다. 1928년에 그 재단은 존슨의 작품 <내가 탄 마차(Swing Low, Sweet Chariot)>에 시상을 하였습니다.

존슨의 초기 고전주의 화풍의 작품들은 점점 근대적인 양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후기 작품들은 아프리카의 조각, 입체주의, 탈인상주의의 영향을 보여주었는데요. 아마도 그가 아카데미에서 교육받는 동안 경험했던 것들의 영향인 듯합니다. 그의 양식이 진화함에 따라 존슨은 보다 대담하게 색과 빛의 실험을 하였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후기 작품을 "상징적 추상"의 한 형태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러한 양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초상화와 영적으로 영감을 받은 이미지들에 관한 그의 강한 취향은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꾸준히 남아 있었습니다.

존슨의 높아진 명성은 주요 기관들의 관심을 사로잡았습니다. 1932년 미국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은 그의 작품 <흑인 여성(Negress)>을 구입하였으며, 그즈음에 뉴저지 오렌지 카운티의 음악 예술 포럼(Musical Art Forum)도 그의 주요 작품 여러 점을 구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력이 막 탄력을 받기 시작했을 무렵, 그의 삶은 비극적으로 짧게 끝나버렸습니다. 그는 사망하기 얼마 전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일상과 남부의 풍경을 기록하기 위한 연작을 그리기 위해 버지니아로 여행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는데, 불과 38살의 나이였습니다.

추신. 할렘 르네상스는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시골 남부를 떠나 산업화된 북부 지역의 일감을 찾아 이동했던 흑인 대이동(Great Migration) 덕분에 가능하였습니다. 이 경험에 관한 감동적인 회고작인 제이콥 로렌스(Jacob Lawrence)의 <이주 연대기(The Migration Series)>를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