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루이즈 플뢰게 by 구스타프 클림트 - 1902 - 178 × 80 cm 에밀리 루이즈 플뢰게 by 구스타프 클림트 - 1902 - 178 × 80 cm

에밀리 루이즈 플뢰게

캔버스에 유채 • 178 × 80 cm

  • 구스타프 클림트 - 1862년 7월 14일 - 1918년 2월 6일 구스타프 클림트

    1902

에밀리 플뢰게는 꽤나 독특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와 구스타프 클림트는 수년간 때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는데요. 비록 두 사람 사이에 로맨틱한 감정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들의 관계(순수한 우정?) 이야기는 클림트가 죽을 때까지 27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클림트는 유명한 바람둥이였죠. 그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열네 명의 아이를 두었답니다.  그는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는데, 어머니의 죽음은 그가 죽기 불과 3년 전이었어요. 그렇다면 그와 에밀리 플뢰게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에밀리 플뢰게는 빈의 보헤미안 및 세기말(fin de siècle) 서클의 일원이었고 또한 성공한 사업가였죠. 자매들과 함께 '슈베르트렌 플뢰게(Flöge 자매들)'라는 오트쿠튀르 패션 살롱을 운영했어요. 살롱 밖에서 에밀리는 당시 사회 관습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반항적인 패션 취향을 보였습니다.  1891년 이후 클림트는 수많은 작품에서 에밀리를 묘사했는데요, 일부 미술사 학자들은 그의 유명한 <키스>(1907–08)가 화가와 플뢰게를 연인으로 보여준다고 믿기도 합니다. 

위 초상화는 플뢰게가 스물여덟 살 때 그려졌습니다. 에밀리의 드레스는 당시 관습적인 패션의 엄격한 규율과 코르셋에 대한 급진적 대안을 제시한 예술적이며 자유로운 의상인 전형적인 '개혁복(Reformkleider)'입니다. 장식적인 나선형, 금색 사각형, 점들로 덮인 호화로운 직물은 몸통 부분의 기하학적 패턴과 대비를 이루는데, 이는 비너 베르크슈타테(Wiener Werkstätte) 디자인을 예고하는 모티프입니다. 이 체크 무늬 모티프는 플뢰게가 입었던 여러 드레스에 등장했지요. 

그들 사이에 진정으로 존재했던 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이 초상화는 그것이 실재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입니다. 그들의 관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DailyArt 매거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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