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의 죽음(The Death of Cleopatra) by Edmonia Lewis - 1876 - 160.0 x 79.4 x 116.8 cm 클레오파트라의 죽음(The Death of Cleopatra) by Edmonia Lewis - 1876 - 160.0 x 79.4 x 116.8 cm

클레오파트라의 죽음(The Death of Cleopatra)

대리석 • 160.0 x 79.4 x 116.8 cm
  • Edmonia Lewis - c. July 4, 1844 - September 17, 1907 Edmonia Lewis 1876

흑인 역사의 달(2월)이 다가오는 여성 역사의 달(3월)을 만나게 될 순간이 바로 오늘이군요 :)

이 조각상은 에드모니아 루이스(Edmonia Lewis)가 제작했습니다. 그는 1843년 또는 1845년에 오하이오 또는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전문 조각가입니다. 아버지는 노예 해방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어머니는 치페와 인디언(Chippewa Indian)입니다. 채 5살이 되기도 전에 고아가 된 루이스는, 12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의 유랑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루이스의 전기는 실로 놀라우며, 그를 다룬 저희의 기사를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그는 조각가가 되길 간절히 원했고,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조각품 중 대다수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전 51년~30년, 이집트의 전설적인 여왕 클레오파트라(기원전 69년~30년)는 극적인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치명적인 독뱀에 물렸다고 하죠. 여기서 에드모니아 루이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사후 순간을 묘사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왕가 의복을 입고, 왕좌 위에 장엄하게 누워있습니다. 왕좌 양쪽을 똑같이 장식한 스핑크스 머리는, 클레오파트라와 로마 장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 Antony)가 낳은 쌍둥이를 의미합니다. 반면 왕좌 등받이 측면에 상형문자로 쓰인 글씨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루이스가 활동할 당시 신고전주의 양식이 유행하여 고전·성경·문학 주제가 선호되었고, 따라서 클레오파트라도 흔한 주제였습니다. 이상적인 클레오파트라가 한낱 자살을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묘사했던 당대 예술가와 달리, 루이스는 코브라의 독이 퍼진 후 나타난 여왕의 죽음을 조금 더 사실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당시에는 "섬뜩하고 매우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 조각품은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센테니얼 국제 전시회(Centennial Exhibition)에 최초로 출품되어 대단한 호평을 얻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미국 조각상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러나 데뷔 이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거의 1세기 동안 분실로 추정되었고, 이후 시카고 술집에 등장했는데 근교의 경마장에서 말의 무덤을 표시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결국 1980년대에 폐차장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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