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와 여인 by Leonardo da Vinci - 1489–90 - 54 cm × 39 cm 족제비와 여인 by Leonardo da Vinci - 1489–90 - 54 cm × 39 cm

족제비와 여인

판넬에 유화 • 54 cm × 39 cm
  • Leonardo da Vinci - 15 April 1452 - 2 May 1519 Leonardo da Vinci 1489–90

500년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비범한 예술가 중 한 명이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죽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레오나르도가 그의 조국 이탈리아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가 64세였던 1516년에 암보이즈 근처의 클로르루스에 있는 훌륭한 장원에서 살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그는 몸이 좋지 않았고 그의 손이 너무 마비되어 그림을 그릴 수 없었지만, 그와 프랑스의 젊은 왕 프란시스 1세는 철학부터 예술, 건축, 공학까지 모든 것을 논하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조르지오 바사리는 1550년에 저명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삶이라는 책에서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레오나르도의 머리를 받쳐 준 왕의 품 속에서 죽었다"고 기록하였다.

레오나르도는 프랑스로 여행을 갈 때 모나 리자를 가져갔었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오늘날 이 그림을 루브르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이 대가의 또 다른 유명한 그림인 족제비와 여인을 크라코프 미술관 덕분에 소개하게 되었다 National Museum in Krakow.

초상화의 주제는 세실리아 갈레라니(Cecilia Gallerani)로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forza)의 정부 시절 그려진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공작을 섬기고 있었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가 그린 4개의 여성 초상화 중 하나이고, 다른 것들은 모나리자, 지네브라 데 벤시의 초상화, 그리고 라 벨 페로니에르다.

세실리아는 부유하지도 고귀하지도 않은 대가족의 일원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작의 궁정에서 잠시 근무했었다. 초상화가 그려졌을 때 그녀는 약 16살이었고, 아름다움과 학식 그리고 시로 유명했다. 그녀는 대략 6살 때 비스코티 집의 젊은 귀족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공개되지 않은 이유로 1487년에 결혼을 무효로 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고 그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11년 전에 베아트리체 데스테와 결혼하였으나, 공작은 세실리아를 정부로 두고 아들을 낳았다. 베아트리체는 겨우 5살 때 공작과 약속을 했고, 1491년 16살 때 결혼했다. 몇 달 후, 그녀는 공작이 여전히 갈레라니와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를 베르가미노라는 지역 백작과 결혼시킴으로써 공작에게 정부와의 관계를 끝내도록 강요했다.

P.S. 르네상스 천재의 전기는 여전히 미스터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생존 초상화 다섯 점 중 네 점이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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