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왕좌위의 나디르 샤 by Unknown Artist - 1850 공작왕좌위의 나디르 샤 by Unknown Artist - 1850

공작왕좌위의 나디르 샤

무굴 세밀화, 종이에 불투명한 수채물감과 금으로 칠함 •
  • Unknown Artist Unknown Artist 1850

나디르 샤 아프샤르(Nadir Shah Afshar)는 중앙터키 근원지의 잔인한 군주이자 페르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샤 왕조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군사력으로 유명했고 제2의 알렉산더대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1739년 델리로의 대규모 공격은 무굴시대의 분수령이었습니다. 비록 이 공격이전부터 무굴왕조는 저물고 있었지만 나디르 샤의 승리는 한때 무시무시했던 타메를란과 징기스칸 후손들의 몰락의 선언이었습니다. 나디르 샤는 무굴 왕조의 권력의 영속적 상징인 공작왕좌를 포함해서 그 제국의 보물 대부분을 가지고 이란으로 귀환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나디르 샤는 폭압적이고 무자비하게 변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새로운 반란들이 발생할때마다 그는 무자비하게 탄압을 하였습니다. 그는 정신분열의 증상을 보였고 이는 그의 부족민들과 관리들을 겁에 질리게 하여 그가 너무 위험해서 통치를 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747년 6월 20일에 나디르 샤의 장군들이 그를 암살하기 위해 침실로 들이닥쳤습니다. 비록 그들은 잠이 든 나드리 샤를 놀라게는 하였지만 그는 암살자들중 두명을 암살이 성공하기 직전에 간신히 죽일 수 있었습니다. 나디르 샤의 사후에 페르시아는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었고 왕궁들은 약탈되어 공작왕좌는 영원히 분실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그림은 델리 공격 100년 이후에 마지막 무굴의 황제였던 바하두르 샤(Bahadur Shah)2세의 궁궐안에 그려졌습니다. 몸의 3/4이 보이고 얼굴은 전체가 보이게 그리는 전통적인 무굴 양식으로 그려졌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형천막과 참석중인 여성들의 의상또한 전형적인 무굴 패션이지만 샤는 그의 독특한 터번으로 쉽게 구분이 됩니다. 이 그림은 나디르 샤가 1739년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무굴제국은 그로부터 100년 이상을 지속했음을 떠올리게 할려는 목적으로 그려진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무굴의 보고와 그들의 영향력은 1739년 전쟁이후 결코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 마야 톨라(Maya Tola)

P.S. 이 상징적인 공작왕좌(Takht-i-taus)는 17세기 귀중한 보석들의 위대한 집합체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공예품에 대해 추가적인 내용은 여기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