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벤센부인의 정원 의자에 앉아있는 마리 크뢰이어 by P.S. Krøyer - 1893 - 76.5 x 67.5 cm 장미. 벤센부인의 정원 의자에 앉아있는 마리 크뢰이어 by P.S. Krøyer - 1893 - 76.5 x 67.5 cm

장미. 벤센부인의 정원 의자에 앉아있는 마리 크뢰이어

캔버스에 유채 • 76.5 x 67.5 cm

  • P.S. Krøyer - July 23, 1851 - November 21, 1909 P.S. Krøyer

    1893

페데르 세베린 크뢰이어(Peder Severin Krøyer)는 1882년 여름에 처음으로 스카겐(Skagen)을 찾았습니다. 시골 풍경과 환경에 대한 그의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그가 거의 매 여름마다 이곳을 다시 찾게 된 이유였죠.  1889년 크뢰이어는 예술가 마리 트리프케(Marie Triepcke)와 결혼했습니다. 1894년에 부부는 스카겐 플랜테이션에 위치한 옛 마을 기록관 관저를 임대해 재건축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는데, 이곳이 오늘날 크뢰이어의 집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마리는 딸 비베케를 출산했고, 1906년 마리와 크뢰이어가 이혼했을 때 비베케는 아버지와 함께 스카겐에 머물렀습니다. 크뢰이어는 스카겐에 처음 왔을 때 이미 유명한 화가였으므로 그의 존재는 스카겐의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여름이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하며 축제를 즐겼는데, 그중 상당수의 모임이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던 크뢰이어의 주도로 열렸다고 합니다. 크뢰이어는 주로 스카겐에서 그린 그림들로 유명해졌고 인기를 얻었죠.  그의 그림에는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한 삶, 축제 같은 식사, 해변 산책, 그리고 감성적인 달빛 밤이 담겨 있습니다. 20세기 초 크뢰이어는 조울증으로 추정되는 질환으로 미델파르트 정신병원에 여러 차례 입원하게 됩니다. 이 병으로 그의 건강은 쇠약해졌는데요. 안타깝게도 1909년 11월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스카겐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